단추를 풀어 편안하게 걸쳐 입는 니트웨어인 카디건의 기원은 19세기 중엽 흑해 연안에서 벌어진 처절한 크림 전쟁(1853~1856년) 이었습니다. 당시 영국군 장병들이 입던 전통적인 털 스웨터는 머리 위로 뒤집어써야 하는 풀오버(Pullover)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격렬한 전투와 혹한이 몰아치는 전장에서 모자와 정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머리로 스웨터를 입고 벗는 것은 매우 번거로웠고, 정성껏 빗어 넘긴 군인의 머리 모양이나 빳빳한 모자가 망가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앞이 트인 형태의 니트 외투를 고안한 주인공이 바로 영국의 귀족이자 군 지휘관이었던 제7대 카디건 백작(제임스 브루드넬, James Brudenell) 이었습니다. 멋과 옷차림에 각별한 신경을 썼던 카디건 백작은 크림반도의 살을 에는 듯한 러시아의 겨울 추위 속에서도 장병들의 체온을 유지하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앞섶에 단추를 달아 모자를 벗지 않고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모직 조끼 형태의 니트를 군복 위에 덧입도록 맞춤 제작했습니다.
1854년 발라클라바 전투에서 ‘경기병 여단의 돌격’을 이끌며 영국 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게 된 카디건 백작의 패션은 전쟁 직후 귀국한 군인들과 대중 사이에서 폭발적인 유행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 이 앞트임 털옷을 ‘카디건(Cardigan)’ 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며 카디건은 또 한 번의 결정적 진화를 겪었습니다. 1920년대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Coco Chanel) 은 여성들을 옥죄던 코르셋 대신 카디건을 여성복 컬렉션에 과감히 도입하며 편안함과 실용성을 갖춘 여성 해방 패션의 아이콘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전장의 혹한 속에서 군인들의 편의와 멋을 지키기 위해 탄생했던 카디건은, 한 귀족 장군의 이름을 품은 채 성별과 계절을 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클래식 패션의 대표 주자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