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은을 담가두면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고대부터 민간요법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정밀한 현대 과학 기술로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프로젝트였습니다. 1960년대 유인 우주선을 준비하던 NASA는 좁고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비행사들이 마실 물을 장기간 무균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난제에 부딪혔습니다. 지상 정수장에서 흔히 쓰던 염소 소독 방식은 밀폐 공간에서 유독 가스를 유발할 위험이 컸고, 우주선의 배관을 부식시키거나 물맛을 심하게 해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NASA는 독성이 없으면서도 적은 무게로 강력한 살균력을 낼 대안으로 은의 항균력에 주목했습니다. 물이 지나가는 통로에 은 전극을 설치하고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내 극미량의 은 이온($\text{Ag}^+$) 을 물속으로 방출시키는 전기분해 정수 방식을 개발한 것입니다. 방출된 은 이온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세포벽에 달라붙어 세포막을 파괴하고 단백질 효소의 기능을 마비시켜 미생물을 사멸시켰습니다. 화학 약품을 타지 않아 물맛과 냄새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10억 분의 1 단위(ppb) 수준의 극미량만으로 세균 번식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경량 정수 시스템이 완성되었습니다.
아폴로 우주선에서 성능을 입증한 이 기술은 1970년대 NASA의 기술 이전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에 공개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염소 냄새와 피부 자극 없는 고급 수영장 정화 장치나 대형 병원의 배관 소독 설비에 주로 쓰였으나, 정수 소재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정용 정수 필터로 빠르게 확장되었습니다. 필터 내부 활성탄에 은을 결합한 ‘은첨 활성탄’이나 세라믹 은 코팅 필터가 개발되면서, 필터 내부에 고인 물에서 발생하기 쉬운 세균 증식과 2차 오염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낸 것입니다.
우주비행사들에게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NASA의 살균 기술은, 오늘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가정용 냉온정수기, 냉장고 아이스메이커, 야외용 휴대용 정수 빨대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돕는 핵심 필터 기술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