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심장박동기 (Pacemaker) Leave a comment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하거나 느려져 생명을 위협받는 부정맥 환자들에게 제2의 심장이 되어주는 인공심장박동기(페이스메이커, Pacemaker). 1950년대까지만 해도 심장 조율 장치는 텔레비전만큼이나 거대한 외부 기계였습니다. 환자들은 콘센트에 연결된 전선에 묶여 병상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갑작스러운 정전이라도 발생하면 곧바로 심정지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환자의 몸속에 완전히 삽입할 수 있는 휴대용 체내 이식형 박동기의 탄생은 한 공학자의 사소한 ‘부품 조립 실수’에서 출발했습니다.

1956년 미국 버펄로 대학교의 전기공학자 윌슨 그레이트배치(Wilson Greatbatch) 는 심장의 빠른 박동 소리를 증폭하여 기록하는 심음 기록 장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회로를 조립하던 그는 부품 상자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저항기를 꺼내 연결했는데, 원래 넣어야 할 10킬로옴(kΩ) 저항 대신 무려 100배나 저항값이 큰 1메가옴(MΩ) 저항을 실수로 잘못 꽂아 넣었습니다. 전원을 켜자 장치는 소리를 기록하는 대신, 1.8밀리초 동안 전류를 방출하고 1초간 멈추는 간헐적인 전기 신호를 내뿜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인간의 심장이 1분에 약 60회 규칙적으로 뛰는 박동 리듬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맥박 신호였습니다.

그레이트배치는 부품을 잘못 끼워 망친 회로를 폐기하는 대신 번뜩이는 통찰을 발휘했습니다. 심장 소리를 ‘듣는’ 대신, 이 전기 신호로 멈춰가는 심장을 ‘자극’하면 다시 뛰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입니다. 그는 2년간의 연구 끝에 트랜지스터와 배터리를 에폭시 수지로 감싸 체액에 부식되지 않도록 방수 처리한 초소형 체내 이식형 인공심장박동기를 완성했습니다. 1960년 외과의사 윌리엄 차닥(William Chardack)과의 협업으로 심장마비 위기에 처한 환자의 체내에 인류 최초의 성공적인 이식 수술을 집도하며 그 효능을 완벽히 입증했습니다.

저항기 하나를 잘못 집어든 엉뚱한 실수에서 탄생한 인공심장박동기는 의공학 역사상 가장 극적인 세렌디피티(우연한 발견)의 산물입니다. 무거운 전선에 묶여 있던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심장병 환자들에게 자유로운 일상과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 현대 의학의 기적적인 발명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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