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승패는 군인들의 사기뿐만 아니라 ‘식량의 장기 보관’에 달려 있었습니다. 소금에 절이거나(염장), 말리거나(건조), 연기로 그을리는(훈제) 전통적인 보존 방식은 음식의 맛과 영양소를 크게 파괴했고, 장기간 행군하는 병사들은 영양실조와 패혈증, 괴혈병에 시달리기 일쑤였습니다. 1795년 유럽 전역을 누비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군량의 부패를 막고 신선한 상태로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에 1만 2천 프랑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한 주인공은 파리의 제과업자이자 요리사였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였습니다.
아페르는 음식을 샴페인용 두꺼운 유리병에 넣은 뒤 코르크 마개와 철사, 송진으로 단단히 밀봉하고, 끓는 물에 몇 시간 동안 삶아 가열 멸균하는 ‘병조림(Appertization)’ 방식을 고안해 1809년 현상금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에는 미생물의 존재조차 몰랐던 시절이었지만(미생물에 의한 부패 원리는 수십 년 뒤 루이 파스퇴르가 규명함), 공기를 차단하고 열로 소독하면 음식이 썩지 않는다는 경험적 발견이 인류 최초의 밀봉 멸균 식품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유리병은 무겁고 깨지기 쉬워 거친 전장에서 병사들이 들고 다니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한 인물은 영국의 상인 피터 듀란드(Peter Durand) 였습니다. 그는 1810년 깨지기 쉬운 유리병 대신 얇은 철판에 주석을 입힌 튼튼한 금속 용기, 즉 ‘양철 캔(Tin Can)’ 에 음식을 담아 밀봉하는 기술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후 브라이언 돈킨과 존 홀이 이 특허를 사들여 세계 최초의 통조림 공장을 세우고 영국 해군에 쇠고기·야채 통조림을 대량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원통형 금속 상자를 뜻하는 ‘캐니스터(Canister)’는 점차 줄어들어 ‘캔(Can)’ 이라는 단어로 굳어졌고, 동양에서는 통에 담아 만든 음식이라는 뜻의 ‘통조림(筒條林/통조림)’ 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조림이 발명된 후 약 50년 동안 전용 캔따개(Can Opener) 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통조림은 금속이 두껍고 무거워 통 표면에 “총검이나 끌, 망치로 윗면을 두드려 여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병사들은 바위에 내리치거나 총을 쏴서 억지로 열어 먹어야 했습니다. 1858년 미국의 에즈라 워너가 지렛대식 오프너를, 1870년 윌리엄 라이먼이 회전 칼날형 캔따개를 발명하면서 비로소 통조림은 손쉽게 열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전장의 병사들을 먹이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에서 출발한 병조림과 통조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인류의 식탁과 재난 구호, 우주 식량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의 판도를 영원히 바꾸어 놓은 위대한 보존 혁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