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T-shirt) Leave a comment

오늘날 전 세계 남녀노소 누구나 옷장에 여러 벌씩 가지고 있는 티셔츠의 출발점은 겉옷이 아닌 보이지 않는 ‘군용 속옷’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노동자들과 군인들은 상·하의가 하나로 이어진 털 소재의 올인원 내의(유니온 수트)를 입었는데, 덥고 습한 환경에서는 입고 벗기 불편하고 땀 배출이 전혀 되지 않아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에 1904년 단추 없이 머리로 뒤집어쓰는 간편한 면 속옷이 등장했고, 1913년 미국 해군은 이를 정식 군용 속옷으로 채택했습니다. 좁고 후텁지근한 군함 기관실이나 열대 바다에서 복무하던 해군 수병들은 무겁고 답답한 제복 상의를 벗고 흰 면 속옷 차림으로 작업하기 시작했으며, 몸판과 양 소매가 펼쳐졌을 때 알파벳 대문자 ‘T’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티셔츠(T-shirt)’ 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단어는 1920년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낙원의 이편》에 활자로 처음 기록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수백만 명의 연합군 장병들에게 기본 보급품으로 지급된 티셔츠는, 땀 흡수가 빠르고 세탁이 간편하며 질긴 내구성 덕분에 군인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종전 후 고향으로 돌아온 참전 용사들이 군대에서 입던 편안한 티셔츠를 일상 작업복이나 정원 손질용으로 자연스럽게 입기 시작하면서 점차 민간 사회로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까지만 해도 티셔츠를 겉옷으로 입고 외출하는 것은 마치 내복 바람으로 거리에 나서는 것과 같은 무례이자 금기시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완고한 사회적 통념을 단숨에 깨뜨린 주인공은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였습니다. 1951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탄탄한 체격의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가 몸에 딱 붙는 흰 티셔츠 차림으로 야성적인 매력을 뿜어냈고, 1955년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James Dean) 이 흰 티셔츠에 붉은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면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티셔츠는 단숨에 기성세대의 위선과 엄숙주의에 저항하는 청춘의 반항심과 자유의 상징이자 독자적인 ‘겉옷’으로 화려하게 승격되었습니다.

1960~70년대에 이르러 실크스크린 인쇄 기술이 발전하자 티셔츠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걸어 다니는 캔버스’로 변모했습니다. 사람들은 록 밴드의 로고, 반전 평화 운동의 슬로건, 정치적 신념, 브랜드 상표를 가슴에 새겨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습니다. 군함 기관실 속 땀을 닦던 미 해군의 순백색 속옷에서 출발한 티셔츠는, 성별·계급·나이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며 전 인류의 일상과 문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대변하는 불멸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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