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High Heels) Leave a comment

오늘날 여성 패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는 하이힐의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친 전장을 누비던 남성 군인들의 전투 장비였습니다. 9~10세기경부터 말을 타고 활을 쏘던 중동의 페르시아 기병대는 달리는 말 위에서 등자(발걸이)를 딛고 일어설 때 발이 앞으로 미끄러져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발 뒤축에 높은 굽을 달았습니다. 높은 굽이 등자에 단단히 걸리면서 기병들은 거친 질주 속에서도 두 손으로 활을 안정적으로 겨누고 강력한 화력을 뿜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실용적인 군사용 신발은 1599년 페르시아의 아바스 1세가 서유럽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급격히 퍼져나갔습니다. 페르시아의 강력한 군사력과 이국적인 스타일에 매료된 서유럽의 남성 귀족들은 남성성과 용맹함, 기마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앞다투어 굽 높은 신발을 신기 시작했습니다. 이 유행을 권력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바로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Louis XIV) 였습니다. 163cm 남짓한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던 루이 14세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위엄을 세우기 위해 10cm가 넘는 굽을 애용했으며, 값비싼 붉은 염료를 칠한 ‘붉은 굽(Les talons rouges)’ 을 오직 왕족과 특권 귀족층만 신을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했습니다. 험한 노동을 하지 않는 지배 계급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17세기 중반부터는 남성 귀족들의 권위적인 옷차림을 모방하던 여성 귀족들 사이에서도 하이힐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귀족적 허례허식에 대한 반발과 실용주의가 확산되자 남성들은 화려한 장식과 하이힐을 완전히 벗어던졌습니다(남성 복식의 대포기). 반면 여성 복식에서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고 몸의 곡선과 자세를 곧게 세워주는 미적 도구로 재해석되며 점차 여성 전용 신발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선 하이힐은 기술적 혁신을 만나며 또 한 번 진화했습니다. 1950년대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프랑스의 로제 비비에 같은 전설적인 구두 디자이너들은 얇은 굽 내부에 단단한 금속 합금 심을 박아 넣는 공학 기술을 도입하여, 가느다란 단검을 뜻하는 ‘스틸레토 힐(Stiletto heel)’ 을 탄생시켰습니다.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바늘처럼 아찔하게 얇고 높은 굽을 구현해 낸 것입니다. 거친 전장에서 활을 쏘기 위해 등자에 발을 고정하던 페르시아 전사의 지혜에서 출발한 하이힐은, 국왕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붉은 굽을 거쳐 오늘날 전 세계인의 당당한 개성과 우아함을 표현하는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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