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낭만의 도시 파리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랜드마크인 에펠탑은, 탄생 당시 “예술의 도시를 망치는 흉측한 철골 뼈대”라며 온갖 비난과 멸시를 한몸에 받던 천덕꾸러기 임시 구조물이었습니다. 1889년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고 자국의 눈부신 산업 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개최한 파리 만국박람회의 기념비적 진입 관문으로 300m 높이의 거대한 철탑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교량 공학의 거장이자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내부 철골을 설계했던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의 설계안이 채택되면서, 1만 8천여 개의 단조 철재 부품과 250만 개의 리벳을 결합해 단 2년 2개월 만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석조 건축물에 익숙했던 당대 프랑스 문화예술계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알렉상드르 뒤마 2세, 작곡가 샤를 구노 등 파리의 대표 예술인 300여 명은 “파리 한복판에 괴물 같은 검은 공장 굴뚝을 세워 파리의 우아함을 짓밟고 있다”며 격렬한 건설 반대 탄원서를 발표했습니다. 특히 모파상은 “파리 시내에서 이 흉물스러운 탑을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탑 내부의 식당뿐”이라며 에펠탑 2층 레스토랑을 매일 찾아가 식사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원래 에펠탑은 박람회 운영 규정에 따라 20년 뒤인 1909년에 완전히 해체되어 고철로 처분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펠탑의 운명을 180도 바꾼 것은 ‘무선 통신’이었습니다. 에펠은 탑 꼭대기에 기상 관측 설비와 군사용 대형 무선 전신 안테나를 설치해 철탑이 국방과 통신에 필수적인 시설임을 적극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통신 암호를 도청하고 파리를 방어하는 결정적 역할을 해내면서 에펠탑은 철거를 면하고 영구 보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20년 뒤 철거될 뻔했던 만국박람회의 임시 관문에서 출발한 에펠탑은, 시대를 앞서간 공학적 대담함과 끊임없는 유용성의 증명을 통해 비난을 찬사로 뒤바꾸며 인류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철골 예술이자 불멸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