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나 소의 창자 속에 선지, 고기, 채소, 곡물 등을 양념해 꽉 채워 넣고 찌거나 삶아내는 순대는, 버려지는 부위 없이 가축의 모든 영양을 온전히 보존하려 했던 유목민의 야전 생존 지혜와 한반도의 정교한 발효·조리 문화가 결합하여 탄생한 대표적인 전통 육가공 음식입니다.
순대의 기원을 둘러싼 대표적인 유래설과 어원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몽골 기마 군단 군량 전래설 (몽골 기원설): 13세기 징기스칸의 몽골 기마병들이 전장에서 가축의 창자에 피와 다진 고기를 채워 건조하거나 삶아 휴대용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던 식문화가 고려 후기 한반도에 전래되었다는 학설입니다. 몽골의 전통 내장 요리인 ‘게데스(Gedes)’가 고려의 육식 문화와 융합되며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설명입니다.
- 만주·여진족 어원설 (북방 민족 언어설): 만주어와 여진어에서 피를 뜻하는 ‘셍기(Senggi)’와 창자를 뜻하는 ‘두하(Duha)’, 혹은 피를 채운 내장 요리를 가리키는 만주어 ‘셍기-헤리(Senggi-heli)’에서 ‘순대’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는 어원학적 견해입니다. 예로부터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방 국경 지대에서 순대 문화가 특히 발달했던 지리적 배경과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 중국 고대 《제민요술》 전래설 (고문헌 유래설): 6세기 중국 북위(北魏) 시대의 종합 농업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기록된 ‘양반장법(羊盤腸法)’을 순대의 시초로 보는 견해입니다. 양의 피와 다진 고기, 멥쌀가루, 향신료를 양의 창자에 채워 삶아 먹던 조리법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시기 한반도로 유입되어 토착화되었다는 설명입니다.
- 조선 시대 조리서 기록과 자생적 발전: 한글로 쓰인 최고(最古)의 조리서인 17세기 《음식디미방(閨壼是議方)》에는 개창자에 소를 채워 넣은 ‘도야지 슌대’와 개순대의 조리법이 등장하며, 《규합총서(1809년)》와 《시의전서(19세기 말)》에는 소창자에 꿩고기, 양지머리, 메밀가루 등을 채운 고급 ‘어육순대’와 내장에 소를 채우는 ‘관장(灌腸)’ 조리법이 정교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본래 전통 순대는 찹쌀과 숙주, 배추, 선지, 고기를 아낌없이 채워 넣던 귀한 잔치·접대용 명절 음식이었습니다. 함경도의 큼직한 대창을 쓴 ‘아바이순대’, 선지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충청도의 ‘병천순대’와 ‘백암순대’, 동해안에서 내장 대신 오징어를 활용한 ‘오징어순대’, 제주도의 선지 위주 메밀 순대인 ‘수애’ 등 지역 환경에 맞춘 다채로운 향토 순대로 분화 발전했습니다.
1960~70년대에 이르러 축산 장려와 당면 대량 생산 공장이 맞물리면서, 값비싼 고기와 찹쌀 대신 당면과 선지를 채워 넣은 ‘당면순대’가 개발되었습니다. 저렴하면서도 쫄깃한 당면순대는 분식집과 포장마차의 떡볶이, 튀김과 함께 어우러지며 서민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민 길거리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대륙을 질주하던 기마병의 비상식량에서 출발해 반가의 정갈한 ‘관장’ 요리를 거쳐 현대 서민의 든든한 길거리 간식으로 거듭난 순대는, 가축의 온 부위를 남김없이 귀하게 살려낸 조상의 지혜와 시대의 변화를 오롯이 품어낸 불멸의 소울푸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