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흔히 ‘바바리 코트’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트렌치코트는 19세기 영국의 축축하고 변덕스러운 날씨를 극복하려는 한 청년의 직물 혁신에서 출발했습니다. 1856년 영국 햄프셔주 베이싱스토크에서 포목상을 열었던 21세의 청년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 는 당시 농부와 목동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입던 뻣뻣하고 무거운 고무 방수 코트(매킨토시)의 치명적인 단점에 주목했습니다. 고무 코트는 물은 막아주었지만 땀과 열이 배출되지 않아 통풍이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토머스 버버리는 1879년, 원사를 짜기 전 실 자체에 특수 방수 처리를 한 뒤 촘촘하게 능직으로 직조한 신소재 직물 개버딘(Gabardine) 을 개발해 1888년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비바람을 완벽히 튕겨내면서도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났던 개버딘은 남극점을 정복한 로알 아문센과 어니스트 섀클턴 같은 극지 탐험가들의 방한복으로 채택되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기능성 외투가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이었습니다. 영국 육군성은 진흙탕과 빗물로 뒤덮인 최전선 전장에서 장교들이 입을 전천후 야전 외투 제작을 버버리에 의뢰했습니다. 깊게 파인 축축한 참호 속에서 병사들의 체온을 유지하고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이 외투는, 참호를 뜻하는 영단어 ‘트렌치(Trench)’ 에서 이름을 따와 ‘트렌치코트(Trench Coat)’ 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트렌치코트의 상징적인 디테일들은 모두 전장의 혹독한 실전 경험에서 탄생한 군사적 기능의 산물이었습니다. 어깨의 견장(Epaulet) 은 계급장을 달거나 호루라기, 장갑을 걸어두는 용도였고, 오른쪽 가슴을 덧댄 건 플랩(스톰 플랩) 은 소총 사격 시 총의 개머리판 반동 충격을 덜어주고 비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주었습니다. 허리띠에 달린 금속 D링(D-ring) 은 수류탄이나 탄약통, 지도 케이스를 매달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소매 끝의 스트랩은 비바람과 진흙의 침투를 막고 손목을 단단히 조여 활동성을 높였습니다. 등 뒤에 덧대어진 플랩(스톰 실드) 역시 등판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아래로 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된 지혜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트렌치코트는 고향으로 돌아온 장교들을 통해 일상복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1940년대 할리우드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가 깃을 세우고 등장하며 고독한 남성의 상징이 되었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빗속에서 착용하면서 세련되고 도시적인 클래식 패션의 정점으로 거듭났습니다. 진흙탕 참호 속 장교들의 목숨을 지켜주던 군용 방수복에서 출발한 버버리 코트는, 군사적 실용성과 시대를 초월한 우아함이 완벽하게 결합한 현대 패션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콘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