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 부리 (고속열차 신칸센 500계) Leave a comment

1990년대 일본에서는 최고 속도 시속 300km를 목표로 차세대 고속열차(신칸센) 개발이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열차 속도가 빨라질수록 생각지도 못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열차가 좁은 터널로 진입할 때 열차 앞부분이 공기를 강하게 밀어내면서 터널 내부의 공기가 급격히 압축되었고, 터널 출구로 빠져나갈 때 마치 대포 소리와 같은 거대한 폭음(터널 미기압파)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 폭음은 수 킬로미터 밖의 주민들을 놀라게 하고 민원을 유발했을 뿐만 아니라 열차 차체에도 큰 충격을 주어 속도를 더 이상 올리지 못하는 큰 장벽이 되었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한 주인공은 열차 기술 개발 책임자이자 열렬한 조류 관찰 애호가였던 엔지니어 나카쓰 에이지(中津英治) 였습니다. 그는 공기라는 희박한 매질에서 물이라는 빽빽한 매질로 다이빙할 때 물방울 하나 거의 튀기지 않고 매끄럽게 물고기를 낚아채는 물총새(Kingfisher) 의 사냥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연구진이 물총새의 머리와 부리 모양을 정밀 분석한 결과, 위아래와 좌우 단면이 매끄러운 쐐기형(원뿔에 가까운 다이아몬드형)으로 뻗어 있어 유체의 저항과 압력 변화를 가장 부드럽게 분산시키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유선형 구조를 신칸센 500계 열차의 앞코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하여 약 15m에 달하는 길고 날렵한 부리 모양의 노즈(Nose)를 완성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터널 진입 시 발생하던 폭음이 규제 기준치 이하로 완벽하게 억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기 저항이 30%나 줄어들고 전력 소비량도 15% 절감되었습니다. 덕분에 신칸센 500계는 승차감을 대폭 개선하면서도 목표였던 시속 300km 상업 운행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공기와 물의 경계를 가장 저항 없이 뚫고 들어가는 물총새의 부리 구조가, 고속열차의 소음과 속도 한계를 극복해 낸 대표적인 생체모방 공학의 명작으로 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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