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컴퓨터 마우스) Leave a comment

1960년대 초반, 키보드로 복잡한 텍스트 명령어를 일일이 입력하던 시절에 화면 속 위치를 손으로 직접 가리키듯 직관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도구를 고민하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SRI)의 컴퓨터 과학자 더글러스 엔겔바트(Douglas Engelbart) 박사였습니다. 그는 1964년 동료 엔지니어 빌 잉글리시(Bill English) 와 함께 직교하는 두 개의 금속 바퀴를 장착한 투박한 사각형 나무 상자 형태의 장치를 제작했습니다. 바퀴가 각각 X축(좌우)과 Y축(상하)의 물리적 움직임을 감지해 화면 속 커서를 움직이고, 상단의 붉은색 버튼으로 클릭 명령을 내리는 구조였습니다. 기기 뒤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연결선이 마치 쥐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연구실 직원들이 장난스럽게 부르던 ‘마우스(Mouse)’라는 별칭은 그대로 이 위대한 발명품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당시 특허 출원서에 적힌 공식 명칭은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위한 X-Y 위치 지시계’였습니다.

1968년 12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컴퓨터 학회에서 엔겔바트 박사는 IT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연으로 꼽히는 90분간의 전설적인 강연, 이른바 ‘모든 데모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Demos)’ 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이 한 번의 무대에서 마우스를 이용한 직관적인 화면 조작뿐만 아니라, 문서를 클릭하면 관련 페이지로 이동하는 하이퍼텍스트, 화면 분할 및 실시간 화상 회의, 원격 실시간 협업 문서 편집까지 반세기를 앞서간 혁신 기술들을 세계 최초로 동시에 시연하며 전 세계 공학자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후 마우스를 실제로 제작했던 빌 잉글리시가 제록스 파크(Xerox PARC)로 자리를 옮기면서, 뻣뻣한 두 바퀴 대신 자유롭게 구르는 볼을 장착해 전 방향으로 매끄럽게 움직이는 ‘볼 마우스’를 개발했고 제록스의 GUI 컴퓨터인 ‘알토(Alto)’와 ‘스타(Star)’에 기본 입력 장치로 채택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록스의 마우스는 수백 개의 정밀 부품이 들어가 제작 단가만 수백 달러에 달했고, 고장이 잦아 일반 대중이 가정에서 쓰기에는 턱없이 비싸고 비실용적이었습니다.

이 마우스를 오늘날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대중적인 도구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였습니다. 1979년 제록스 파크를 방문해 마우스와 그래픽 화면의 조합을 목격한 잡스는 컴퓨터 조작의 미래가 여기에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산업 디자인 기업 IDEO(당시 호비-켈리 디자인)에 “수백 달러짜리 복잡한 마우스를 식탁 위 먼지 속에서도 고장 나지 않는 15달러짜리 단순하고 튼튼한 제품으로 다시 설계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연구진은 부품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고무 코팅된 쇠구슬과 광학 롤러를 결합한 간결한 원버튼 구조를 완성해 냈고, 이는 1983년 ‘애플 리사’를 거쳐 1984년 매킨토시(Macintosh) 에 탑재되며 폭발적인 대중화를 이뤄냈습니다. 이후 마우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보급과 함께 PC의 필수품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으며, 기계식 볼에서 빛을 추적하는 광학·레이저 센서로, 나아가 선을 없앤 무선 마우스로 눈부신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최초 발명가인 엔겔바트 박사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뒷이야기가 남았습니다. 1970년에 마우스 특허를 취득했으나 특허권 자체가 개인이 아닌 소속 기관(SRI)에 귀속되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주도로 마우스가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직전 17년의 특허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천문학적인 상업적 부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손으로 깎아 만든 나무 상자에 전선을 달았던 그의 대담한 발상은 난해한 텍스트 기계였던 컴퓨터를 인간의 손끝과 직관적으로 연결하며 ‘인간 지성의 확장’을 이뤄낸 가장 위대한 인터페이스 혁명으로 IT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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