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압 전류를 순간적으로 흘려 사형수를 감전사시키는 집행 도구인 전기의자(Electric Chair)는, 19세기 후반 교수형보다 고통 없는 인도적인 처형 방식을 찾으려던 한 치과의사의 착상과 경쟁자의 교류(AC) 시스템을 매장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던 토머스 에디슨의 흑색선전이 결합하여 탄생한 발명품입니다.
전기의자가 사형 집행 도구로 채택되고 상용화된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치과의사 앨프리드 사우스윅의 ‘인도적 처형’ 착상: 1881년 미국 뉴욕의 치과의사 앨프리드 사우스윅(Alfred P. Southwick)은 발전기 전선에 감전된 취객이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즉사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밧줄이 풀리거나 질식 시간이 길어져 잔혹하다는 비판을 받던 기존 교수형을 대체하기 위해, 그는 치과 치료 의자에 전극을 연결해 순간적인 고전압으로 뇌를 정지시키는 ‘전기 사형’을 뉴욕주 정부에 제안했습니다.
- 에디슨의 전류 전쟁과 교류(AC) 전기의자 제작: 뉴욕주가 전기 사형을 법제화하자, 직류(DC)의 독점권을 지키려던 에디슨이 이를 경쟁 상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AC)를 침몰시킬 기회로 삼았습니다. 에디슨은 연구원 해럴드 브라운을 배후 지원해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발전기로 전기의자를 만들도록 유도했습니다. ‘교류는 사람을 죽이는 위험한 전기’라는 공포를 심고, 감전사하는 것을 두고 “웨스팅하우스당했다(Westinghoused)”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를 퍼뜨리려는 계산이었습니다.
- 1890년 최초의 집행과 참혹한 비극: 1890년 8월 뉴욕 오번 교도소에서 살인범 윌리엄 케믈러(William Kemmler)를 대상으로 사상 최초의 전기의자 처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압과 통전 시간 계산 실수로 1차 전류(1,000V)에서 사형수가 숨지지 않았고, 전압을 2,000V로 올려 재통전하자 전극 부위에서 불꽃과 연기가 치솟으며 살이 타는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고통 없는 인도적 처형이라는 명분이 무색해진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형수의 고통을 줄이겠다는 명분과 상대 기술을 무너뜨리려던 상업적 독점욕의 결합으로 탄생한 전기의자는, 사형 제도마저 기업 간 이권 다툼의 도구로 악용되었던 미국 산업화 시대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