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계단이 스스로 움직여 사람들을 위아래로 실어 나르는 에스컬레이터(Escalator)의 탄생은, 19세기 말 미국의 두 발명가가 선보인 독창적인 기술과 만국박람회의 화려한 쇼케이스에서 출발하여 독점 상표가 보통명사로 굳어진 대표적인 상표의 보통명사화(Genericized Trademark) 사례입니다.
1892년 미국의 발명가 제시 레노(Jesse W. Reno)는 25도 각도로 기울어진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경사 엘리베이터(Inclined Elevator)’를 개발해 뉴욕 코니아일랜드 놀이공원에 설치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초기 모델은 평평한 계단이 아니라 비스듬한 고무판 형태여서 탑승하기에 다소 불안정했습니다. 발판이 수평을 유지하며 계단 모양으로 접히고 펼쳐지는 진정한 현대식 구조를 고안한 주인공은 찰스 시버거(Charles Seeberger)였습니다. 시버거는 라틴어로 사다리·계단을 뜻하는 ‘스칼라(Scala)’와 승강기를 뜻하는 ‘엘리베이터(Elevator)’를 합성하여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고, 1899년 승강기 전문 기업 오티스(Otis Elevator Company)와 손을 잡고 최초의 상업용 수평 계단식 이동 장치를 완성하여 상표로 등록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며 대중화된 결정적 무대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였습니다. 박람회장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수많은 관람객을 태우고 부드럽게 층계를 오르내리며 박람회 최고의 인기 명물로 떠올랐고, 기술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최고상(그랑프리)을 거머쥐었습니다. 박람회의 대성공 이후 오티스 사는 제시 레노의 특허까지 사들이며 시장을 독점했고, 에스컬레이터는 뉴욕과 런던의 백화점, 기차역, 지하철 등 대규모 인파가 이동하는 도심 주요 공간의 핵심 인프라로 빠르게 보급되었습니다.
원래 에스컬레이터는 오티스 사의 독점 등록상표였으며, 공식적인 기술적 보통명사는 ‘자동 계단(Moving Stairs)’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티스 사가 광고에서 상표 관리를 소홀히 하고 전 세계 대중과 경쟁사들이 움직이는 계단 자체를 ‘에스컬레이터’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1950년 미국 법원은 “이미 대중에게 특정 회사의 상표가 아닌 움직이는 자동 계단 자체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인식되었다”고 판결하며 독점 상표권을 공식 박탈(보통명칭화)했습니다.
놀이공원의 호기심 어린 장치에서 출발해 만국박람회의 뜨거운 갈채를 받으며 도약한 에스컬레이터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인류의 보행 패턴과 현대 도시의 수직 이동을 혁신한 가장 편리하고 상징적인 이동 문명의 발명품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